

오늘을 넘기지 못하면, 네 아들은 '또'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쿠당탕! 침대에서 바닥으로 낙하한 렌고쿠 신쥬로가 눈을 떴다. 바닥과 진하게 입맞춤한 허리는 아프기만 한데 신쥬로는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뭐라고? 누가 뭘 맞이하지 못해?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꿈 주제에 거대한 노호성만이 머릿속에 남아 울린다. 못할 것이다, 못할 것이다, 못할 것이다.
메아리처럼, 또는 뎅뎅 경종이 울리듯 연달아.
"….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잠시 눈을 깜빡이던 신쥬로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요즘 몸이 피곤하더니 질 나쁜 악몽이라도 꾼 모양이었다. 찌뿌둥한 허리를 짚고 몸을 일으키자 우두둑 뼛소리가 났다. 제법 살벌한 소리라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온다. 호흡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슬슬 무리해선 안 되는 나이대로 접어드는 만큼 걱정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지끈지끈 쑤시는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신쥬로가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모처럼 큰아들과 단둘이 집에 있는 날이었다. 루카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키나와로 여행을 갔고, 센쥬로는 부활동의 일환으로 합숙 중이었다. 센쥬로면 모를까 신쥬로나 쿄쥬로는 좀처럼 요리에 재능이 없었으므로 오늘 하루가 걱정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을 위해 간장계란밥 레시피와 즉석 라면 레시피를 독파한 신쥬로가 결심을 다졌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루카는 세 끼를 모두 밖에 나가서 먹는 것을 추천하긴 했지만 성인 남자 둘이 설마 한 끼도 스스로 못 챙기겠는가. 일단은 아침밥이다. 신쥬로는 몇 개 없는 머릿속 조리법을 뒤적이다가 느릿느릿 침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코끝을 찌르는 매캐한 탄 내에 입을 벌렸다. 요, 요모야!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단말마는 거의 덤이나 다름없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신쥬로의 시선 끝에 달력이 담겼다. 이상하리만치 오래 기억에 남은 꿈, 명확히 한 사람을 지목하는 목소리, 우연이라기엔 절묘한 오늘 날짜, 마지막으로 아침 댓바람부터 온 집안을 꽉 채운 탄내.
렌고쿠 가의 비상한 판단력이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했다. 억측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상황이 정말로 묘했다. 신쥬로가 부엌을 향해 튀어나갔다. 가스레인지 앞에 선, 자신과 똑 닮은 뒷모습을 발견하곤 기함을 토한다.
"쿄쥬로! 무슨 일이냐!"
"아아버지! 별일 아니니 괜찮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불 붙은 후라이팬을 들고 할 법한 소리는 아니었다.
환한 아침 햇살 사이로 넘실대는 불길을 발견한 신쥬로가 경악했다. 물, 물, 아니, 후라이팬이면 기름이다! 선반 위에 덩그러니 놓인 후라이팬 뚜껑을 찾아다 쿄쥬로와 불길 사이로 끼어들었다. 가히 예술적인 솜씨로 불길 위에 뚜껑이 덮였다. 검은 연기와 함께 너풀대던 불꽃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부자 사이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신쥬로는 십 년은 늙은 낯으로 큰아들을 돌아봤고, 쿄쥬로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 채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그, 계란 후라이를 태워서⋯"
어물어물 새어 나오는 해명에 신쥬로는 대꾸 없이 후라이팬 안을 들여다봤다. 뚜껑 덮인 팬 안에서 거무스름한 숯덩이 몇 개가 굴러다닌다. 반쯤 힘 빠진, 그리고 반쯤 아연한 얼굴로 다시 큰아들을 응시했다. 노랗고 붉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그을려 꼬불꼬불해진 쿄쥬로가 멋쩍게 웃었다. 부엌 창문 너머로 까마귀 두어 마리가 길게 울음을 뺀다. 까— 악.
이것이 바야흐로 5월 9일.
초여름 이파리는 바람에 산들거리고 숫자 10에 빨간 별표가 쳐진 달력은 대롱대롱 평화롭게 흔들리는데, 렌고쿠 신쥬로의 정수리 위엔 시커멓게 먹구름이 낀 아침의 일 되시겠다.
렌고쿠 신쥬로의 재난
고요
그 후로 세 시간. 오전 일곱 시부터 오전 열 시까지의 고작 세 시간 동안 렌고쿠 신쥬로는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었다. 간밤의 그 꿈은 쓸데없고 의미도 없는 노호 따위가 아니었다. 기우는 더더욱 아니었고, 우연의 일치로 인한 악몽도 아니었다.
"⋯⋯."
"수도관⋯⋯."
그건 저 큰아들을 어떻게든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내라는 사명이 틀림없었다. 제 꿈에 나타나 그 사명을 부여한 것이 도대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몰라도 아주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리라 그는 짐작했다. 고작해야 세 시간 동안 온갖 작은 소동에 시달린 끝에, 마침내 수도관 폭발 사고까지 겪고 나서야 도출한 결론이었다.
물이 콸콸 쏟아지는 수도관 앞에서 신쥬로가 끝내 목덜미를 짚는다. 물을 뒤집어쓴 탓에 쫄딱 젖은 쿄쥬로도 이번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고치겠습니다!"
"아니, 됐다. 내가 하마. 넌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라."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 아들을 붙잡은 신쥬로가 쿄쥬로에게 수건을 던졌다. 물 떨어지니 먼저 닦고. 어깨를 쭉쭉 미는 아버지 탓에 문간까지 밀려난 쿄쥬로가 머뭇거렸다. 차마 마루 위엔 올라가지 못하고 타일에 발을 디딘 채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한대도? 넌 가서⋯, 그래. 가서 별자리 운세라도 확,"
철썩. 심드렁히 대꾸하던 신쥬로의 위로 다시 한번 물살이 쏟아져 내린다. 화장실 타일 위로 떨어지는 물소리만 요란한 가운데 쿄쥬로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 수도관, 저번에 고장 났던 걸 고쳐 놓은 터라 잘못 건들면 물이 계속 튀어나올 겁니다. 완전히 고치기 전까진 계속 젖을 테니 그냥 제가 하겠다고 한 건데.
아무튼 되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하루였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쫄딱 젖은 꼴의 신쥬로가 착잡한 얼굴로 이마를 짚는다. 제법 드문 풍경이라 쿄쥬로는 작게 킥킥대며 웃었다. 신쥬로는 차마 만류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황소자리 운세는 그 이름부터 빛나는 12위였다. 하필이면? 「인생이 아슬아슬할지도 모르는 하루. 힘내길 바라요!」하고, 쾌활한 어투로 쓰인 오늘의 코멘트를 보며 신쥬로가 재차 이마를 짚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는 쿄쥬로가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콕콕 찌르는 듯한 시선에 신쥬로가 미간을 좁혔다.
"⋯뭐냐."
"아뇨, 그런 걸 믿으시는 줄은 몰랐어서 말입니다."
이번엔 또 신쥬로가 할 말이 없다. 별자리 운세를 믿는 건 오히려 두 아들이었지, 렌고쿠 신쥬로는 그와 같은 미신 따위를 믿기는 커녕 좀처럼 확인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갖고 살아간다는 믿기 어려운 상황 속에 있으면서도 그랬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오늘의 신쥬로에게 별자리 운세는 굳이 따지자면 마지막 보루였다. 악몽을 꿨어도 아침부터 온갖 난리를 쳤어도 운세가 나쁘지 않다면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테다. 반대로 그런 악몽을 꾸고, 아침부터는 온갖 사고가 있었는데 별자리 운세마저 12위라면 아무래도 오늘의 나머지 14시간도 최악의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후자였다.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체감상 이십 년은 늙은 듯한 신쥬로에겐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물론 이런 말을 저 아들에게 늘어놓을 수 있을 리는 없고. 고개를 기울이는 쿄쥬로의 앞에서 신쥬로는 그저 설레설레 손을 흔들고 말았다. 변덕이다, 변덕. 20년간 코앞에서 아버지를 보아 온 아들에겐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이었으나 쿄쥬로는 구태여 지적하지 않았다. 신쥬로는 모른 체 고개를 돌렸다.
간단히 챙긴 아침은 수도관 소동으로 이미 소화된 지 오래고, 슬슬 점심을 챙겨야 할 시간도 지나고 있어서 두 사람은 집을 나가기로 했다. 그건 두 명의 식사분을 소화할 만큼의 음식으로 어떤 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해내지 못한 탓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침부터 고초를 치른 부엌에 다시 발을 들이기 싫다는 신쥬로의 주장 탓이기도 했다. 본인의 안위를 위해서라기보단 부엌의 무사를 위한 결정이었다.
쿄쥬로는 그 결정에 대해 약간 불만스러운 얼굴이긴 했지만 결국 납득했다. 부엌, 특히나 가스레인지엔 손대지 말아 달라는 센쥬로의 당부를 이제야 기억해낸 모양이었다. 창문을 열어 탄내를 빼던 센쥬로는,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가스레인지 후드를 보지 못한 척했다. 난 모르는 일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이미 저렇게 되어있었다고.
식사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끝났다. 습관적으로 외치는 쿄쥬로의 맛있다! 와, 끝도 없이 들어가는 식성 탓에 식당에서 쫒겨날 뻔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마침 식판을 들고 쿄쥬로의 뒤를 지나가던 손님이 의자 다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신쥬로가 넘어지는 손님의 손에서 식판을 사수하는 데 성공한 덕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진 그 손님은 넘어지는 자신이 아닌 식판을 지켜낸 중년 남성의 모습에 어지간히도 어리둥절한 모양이었지만 결국에는 감사를 표하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조심해서 걸어 다녀야지 말이야, 저러다 누가 음식을 뒤집어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투덜대며 자리로 돌아온 신쥬로의 모습에 쿄쥬로는 의미 모를 웃음을 터뜨렸다.
밥을 먹은 뒤엔 공원을 걸었다. 날이 좋아서 그런가 유독 사람이 많은 공원에서 쿄쥬로는 두 번이나 축구공에 얻어맞았다. 그로부터 10분 후, 아들을 향해 날아드는 세 번째 축구공을 발로 걷어내며 신쥬로가 미간을 구겼다. 저만치서 죄송하다며 달려오던 학생들은 험악한 인상에 쭈뼛대야만 했다. 결국 웃는 낯으로 공을 돌려준 건 쿄쥬로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라던가, 제법 덩치가 큰 아이들 사이에서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쿄쥬로는 신쥬로를 이끌고 학생들의 축구에 뛰어들었다.
영문도 모른 채 축구에 참여한 신쥬로는 어쩌다 골을 넣었다. 깔끔하게 들어간 중거리 슛이다. 신난 학생들과 큰아들의 헹가래에 실려 풀밭 위를 한 바퀴 돈 신쥬로는 즉시 은퇴를 선언했다. 대신 한쪽의 벤치에 팔짱을 끼고 앉아 소리치는 감독의 역을 맡았다. 선수 역은 조금 피곤했지만, 감독 역은 꽤 잘 맞는다고 신쥬로는 생각했다.
"쿄쥬로, 왼쪽이다! 아니, 그쪽 말고!!"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아버지!"
축구는 해가 지고서야 끝을 맺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학생들은 돌아갔다. 오래 뛰어서 그런지 슬슬 배가 고파 오고 있었다. 시간도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으나, 한참 뛰어다녀 땀 흘린 상태로는 어디 식당에 들어가기에도 마땅찮았다.
마침 수도꼭지도 고쳤겠다, 집에 들렀다 나오기로 한 둘은 한산한 산책로를 따라 느긋하게 걸었다. 그마저도 쿄쥬로의 배꼽시계가 울리기 전의 이야기다. 강렬하게 우르릉대는 소리에 신쥬로는 웃었고 쿄쥬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빠른 걸음을 옮겼다.
저녁으론 근처의 고깃집이 당첨됬다. 씻자마자 냄새가 배겠다며 툴툴댔지만, 정작 고깃집에 가자며 의견을 낸 것 또한 신쥬로였으므로 쿄쥬로는 그냥 웃고 말았다. 가게에 들어서자 쿄쥬로의 얼굴을 발견한 주인장의 얼굴이 약간 흐려진다. 한구석 자리를 가리키곤 있는 양 전부 꺼내와야겠다며 급히 이야기하는 모습에 신쥬로가 쿄쥬로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기 자주 왔냐?"
"자주는 아니고, 종종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설명이다. 개성도 식욕도 넘치는 아들의 친구들, 신쥬로에겐 이전의 주 일동으로 더 각인된 그들을 떠올린 신쥬로는 주인장의 태도를 이해했다.
식사는 꽤 늦게까지 이어졌다. 가로등이며 네온사인이 반짝여 거리를 밝힌다. 휴일 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식당이며 가게에 자리를 잡았다. 쿄쥬로는, 주인장이 앞서 걱정했던 대로 오랫동안 많이 먹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기다리는 건 아닐까 그는 맞은편 자리를 살폈지만, 술을 병째로 들이키는 아버지는 쿄쥬로보다도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기를 뒤집은 쿄쥬로가 불그스름한 아버지를 응시한다. 따지고 보면 오늘 하루는 참 기묘하게도 운이 없는 하루였다. 요리 실력이야 원래 그런 편이니 섣불리 불을 잡은 자신의 탓이라 쳐도, 수도관이며 온갖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우연이다 싶은 것들이 많긴 했지만.
그런 상황에 아버지의 반응은 조금 묘하기까지 했다. 평소에도 아버지는 쿄쥬로에게 약간 유한 부분이 있었으니 조금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오늘은 그 정도가 심했다. 모든 일에 하나하나 반응하시질 않나, 수도관이 터졌을 땐 무려 스스로 나서시질 않나. 생일 전날이라 그런가?
정신을 판 사이 불판 위의 고기 끄트머리가 타고 있었다. 황급히 집어 물다가, 또 한 병의 술잔에 술을 따르려는 신쥬로를 붙들어 만류했다.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가 풀린 눈으로 느릿느릿 고개를 든다
"⋯응?"
"그러다 몸 상하십니다. 내일도 생각하셔야죠."
"원래 늘 이 정도는 마셨다. 문제없어."
얼굴이 붉어졌달 뿐이지 말투엔 변함이 없으니 정말 그런가 싶기도 했다. 상 위에 줄줄이 놓인 술병이 아니었다면 쿄쥬로도 납득했을 테지만, 오늘은 확실히 과음이다. 다시 술잔에 손을 뻗는 아버지보다 한발 먼저 잔을 집어 들었다. 공연히 헛손질만 한 신쥬로가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내 한숨을 내쉬곤 손을 거뒀다. 알겠다, 알겠어. 밥은 다 먹었냐?
물론 아직이었다. 마지막 남은 고기를 쿄쥬로가 후다닥 입에 밀어 넣었다. 컥, 잘못 삼킨 고깃덩어리가 목에 걸려 캑캑대는 쿄쥬로에게 신쥬로가 급히 물잔을 들이밀었다.
밤거리는 한산했다. 신쥬로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열한 시 사십 칠 분. 벌써 12시가 가까운 시간이기도 하고, 초여름이래도 아직 밤은 쌀쌀한 편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술기운이 올라서 그런지 정신이 알딸딸했다. 말술인 신쥬로였지만 오늘은 확실히 과음한 게 맞았다. 쿄쥬로가 말리지 않았다면 아들에게 업혀 집에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발짝 뒤에서 따라오는 쿄쥬로는 말이 없었다. 오늘 온종일 함께 다니며 자주 웃고 자주 입을 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신쥬로는 의미 없이 쿄쥬로가 잘 따라오고 있나 연신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쥬로가 세 번째로 돌아봤을 때, 결국 눈이 마주치고 쿄쥬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양 고개를 기울였다. 부자연스레 다시 고개를 돌린 신쥬로가 뒷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걸음을 빨리 해 아버지를 따라잡았다. 빤히,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아버지."
"어어, 어."
"오늘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하루종일 같이 있었으면서 무슨 일은. 별일 없다."
"어젯밤에요. 오늘 아침부터 조금 이상하시지 않습니까."
눈치 빠른 놈. 혀 차는 것도 잊은 신쥬로가 침묵했다. 쿄쥬로는 대답을 종용하듯 신쥬로를 바라봤으나 애초에 신쥬로는 털어놓을 만한 말이 없었다. 전생이니 꿈이니 해봤자 다른 사람이 듣기엔 허무맹랑한 일이고. 이번에도 신쥬로가 내놓은 대답은 같았다. 별일 아니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쿄쥬로는 의뭉스러운 낯으로 신쥬로를 응시했고, 신쥬로는 이번에도 모른 척했다. 두 사람분의 발걸음과 풀벌레 소리만 찌르르 찌르르 울렸다. 그 정적이 못내 어색해서 그는 괜히 휴대전화 화면만 들여다봤다. 열한 시 오십 오 분. 아버지의 휴대전화 화면 위로 희끄무레한 시계를 바라보던 쿄쥬로가 끝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아버지가 걱정하시는 게 뭔지 저는 모릅니다."
이제 보니 말씀해주시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만. 부정할 길 없는 정곡이라 신쥬로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 반응에 쿄쥬로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아마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뭔지도 저는 모르지만⋯, 오늘 보니 뭔 일이 있어도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시겠다는 생각도 들고."
"날 너무 믿지 마라."
"아침부터 세 번은 구해주셨으면서."
"그야 휴일이었으니까지. 네가 학교에 가 있는데 구해줄 수는 없잖으냐."
그야 그렇긴 해도⋯, 그래도 곁에 있을 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주신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오늘도 이래저래 일이 많았지만 무사하기도 하고. 말을 마친 쿄쥬로가 잔잔히 미소짓는다. 그 얼굴 위로 백 년 전 아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고 신쥬로는 생각했다. 지나치게 이르게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들.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순식간에 떠나가 버린.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고 아들은 말을 잇는다.
"이유를 말씀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해야 할 게 누군데. 입 밖으로 뱉지도 못하고 신쥬로가 눈동자만 굴렸다. 쿄쥬로는 여전히, 전부 이해한다는 양 눈을 휘어 웃는 얼굴이라 영 얄밉기까지 했다. 약간 보폭을 크게 해 걸으며 신쥬로가 앞장섰다.
"⋯됐다. 인사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니고 뭘 새삼스럽게. 괜히 그러지 말고 좀 더 어린애처럼 굴어라."
"내일이면 스물한 살이지만요."
"스물하나면 아직 애다, 애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축구 잘하시던데요."
말 돌리지 말고. 손을 든 신쥬로가 쿄쥬로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두드린다. 피할 생각도 않고 쿄쥬로는 바람 빠지는 것처럼 웃었다. ⋯빨리 걷기나 해라, 춥다. 띄엄띄엄 선 가로등 빛이 가볍게 깜빡였다. 마침내 나란히 선 두 명 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풀벌레 소리가 울고 시간은 흘러간다.
5월 9일의 일이다. 풀벌레 울고 여름밤 바람이 사늘하게 둘 사이를 훑었다.
참, 생일 축하는 안 해 주십니까?
아직 12시 안 넘었다.
1분 남았습니다만!
1분이나 남았잖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