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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갖고 싶으냐, 쿄쥬로.”

 

고민에 빠졌다. 긴 임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신쥬로는 네 살인 쿄쥬로에게 물었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직접적으로 물었다. 몰래 준비했다가 당일에 놀라게 해주는 등 그런 것에 재주가 없었다. 어설픈 행동에 도전하느니 이러는 편이 훨씬 나았다. 그래서 나흘 만에 집으로 귀가한 신쥬로는 아이에게로 가 다짜고짜 물었다. 쿄쥬로는 신쥬로를 바라봤다. 그러다 생각난 듯 눈을 번뜩였다.

 

“아버지의 검 갖고 싶어요.”

“내 검...말이냐?”

 

신쥬로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가지고 노는 용의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거라면 그러한 물건이 아니라 말해주려 했다. 하지만 신쥬로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 고작 네 살에 불가한 아이였다.

이 아이는.....

신쥬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쿄쥬로는 눈을 감았다. 그의 손길이 좋았다. 손바닥이 다소 거칠긴 했어도 한없이 따뜻했다. 저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손이었다.

 

“넌 루카를 닮았구나.”

 

쿄쥬로는 눈을 떴다. 어떠한 감정이라 정의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웃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첫 생일이었다.

 

 

***

여섯 살이 되던 해, 동생이 생겼다. 시간은 다를지언정 같은 날에 밖을 나왔다. 방 안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쿄쥬로는 문 앞에서 계속 서성거렸다.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 마냥 복도에서 연신 발소리를 냈다. 뭐가 그렇게 슬퍼서 저리 우는 걸까. 쿄쥬로는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어 더 궁금했다.

혼이 나지 않을까.

하지만 아이의 호기심이란 어마어마했다. 작은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곳으로 보이는 풍경은 한정적이었다. 도우러 와준 아줌마의 등밖에 보이지 않았다.

 

“쿄쥬로.”

 

갑작스레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엉덩방아를 찍었다. 아. 황급히 벌떡 일어나 허공에 머리를 숙이려 했다. 하지만 당황한 탓에 거리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문에 머리를 박았다. 쿵, 하는 소리가 제법 컸다.

 

“저런... 괜찮니?”

 

앉아 있던 아줌마는 아이가 걱정되었다. 쿄쥬로는 아픔을 가까스로 삼키며 대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동생이 궁금한가요?”

“아, 아니.... 아. 궁금...합니다.”

 

거절하지 못했다. 제 동생이 될 아이가 어떠한 모습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쿄쥬로는 대답이 들리기 전까지 긴장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루카는 기꺼이 아이를 들여보냈다.

 

“들어오세요.”

“네!!”

 

쿄쥬로는 마른침을 삼켰다. 한 발자국씩 내밀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옆에서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몸을 낮췄다. 그제야 그토록 궁금했던 갓난아기를 볼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 우렁차게 울던 아이가 맞는 걸까. 지금 한없이 조용했다.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어디서 나온 건지 너무나도 여려 보였다.

 

“어떤가요?”

“이상하게 생겼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는 다 이렇습니다, 쿄쥬로.”

 

루카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이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품 안에 있는 아기를 빤히 바라봤다.

쭈글쭈글하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살아있는 게 맞을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 쿄쥬로는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다 멈칫해 루카의 눈치를 살폈다.

 

“만져도 괜찮습니다.”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멈췄던 팔을 움직였다. 쿄쥬로 자신도 어른에 비해 작은 손이었다. 그러나 아기는 더더욱 작았다. 검지로 손바닥을 문질렀다. 말랑하면서도 따뜻했다.

이게 내 동생....

가슴이 작게 뛰기 시작했다. 아기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놀란 쿄쥬로는 손을 급히 빼려 했다. 기분을 안 좋게 한 걸까. 그런 걱정을 하며 팔을 뒤로 빼려던 순간.

 

“!!!! 어, 어머니.”

“어머.”

 

아기는 쿄쥬로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너무나 약해 간단하게 손을 뺄 수 있었으나 빼지 않았다. 말랑한 손이 제 검지를 감싸고 있었다. 제 몸까지 말랑해지는 마냥 기분이 이상했다.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주변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아이와 아기만이 그 공간에 남아있었다. 루카는 쿄쥬로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나 대신 이 아이가.

이 아이라면 동생을 소중히 아껴줄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저, 어머니.”

“네, 쿄쥬로. 왜 불렀나요?”

“이 아기의 이름은 뭔가요.”

 

쿄쥬로는 루카를 빤히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기대되는 건지. 아이는 눈을 한껏 반짝였다. 모든 호기심이 아기에게로 쏠려있었다. 루카는 이런 쿄쥬로의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그러나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진 않았다.

 

“렌고쿠 센쥬로(煉獄 千寿郎)입니다.”

“센쥬로....”

 

쿄쥬로는 중얼거렸다. 작디작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아기는 몸을 움찔거렸다.

 

“어, 어머니! 방금.”

“형의 목소리를 들었나 보네요. 센쥬로는 형이 좋은가 보군요.”

 

눈이 크게 떠졌다. 가슴이 크게 뛰기 시작해 주체하지 못했다.

 

“센쥬로!! 내가 형이다.”

 

순간, 쿄쥬로는 숨을 멈췄다. 아기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걸까. 쿄쥬로가 불러준 이름에 조금이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쿄쥬로는 이 순간을 먼 훗날까지 잊지 못했다. 생일날 동생이 태어났다. 다들 아기의 탄생이 먼저였기에 제 생일은 뒷전이었다. 제대로 축하받지 못했다. 그러나 쿄쥬로는 외롭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기쁜 생일 선물을 받았기에.

대부분 생일 선물을 받으면 감사한 마음에 소중히 다루려 했다. 아껴 쓰려 했다. 그러나 쿄쥬로는 망가트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일곱 번째 생일. 그날 받은 선물은 절대 망가트리지 말아야지. 소중히 해야지. 그리 다짐했다.

 

“함께 축하받으며 함께 기뻐하는 거다, 센쥬로!”

 

 

***

“형님!”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쿄쥬로는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제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음! 뭐 빠트린 거라도 있는 거냐, 센쥬로.”

“아, 이번 임무... 금방 돌아오시는 거죠?”

“아마도 그럴 거 같다만. 곧 무슨 날이었던가.”

“형님 생일이 곧 다가오잖아요.”

 

잊고 있었다. 예전엔 귀살대에 들어가는 것만 집중해 생일을 넘겼다. 그리고 요 근래 기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느라 깜빡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하나뿐인 동생의 생일을 잊다니. 오면서 선물이라도 사오마!! 갖고 싶은 게.”

“아, 아니 그게 아니에요! 형님 생일이기도 하잖아요.”

“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게 생일은 그다지 큰 의미는 없으니까. 낳아주신 어머니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

 

센쥬로는 탐탁지 않다는 얼굴을 보였다. 그는 쿄쥬로가 자신을 더 생각하길 바랐다. 그러나 쿄쥬로는 센쥬로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럼 다녀오마, 센쥬로. 내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

 

아버지는 센쥬로의 생일을 알고 계실까.

의문이 아닌 바람이었다. 쿄쥬로는 센쥬로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간질거리는 감촉과 부드러움에 미소가 저절로 났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기에 여기 오래 있을 순 없었다.

계속 지체할 수도 없는 노릇.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렸다. 그리고 등을 돌렸다.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한발씩 내디뎠다. 붉은 망토 끝이 바람이 휘날렸다. 그때마다 검집이 빛을 드러냈다. 쿄쥬로는 스스럼없이 나아갔다. 제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오늘도 빛에서 어둠으로 향했다.

 

 

***

시야가 흐릿했다. 눈앞이 붉게 물들어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울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는 눈물을 끊임없이 흘려냈다. 저를 위해 슬퍼해 주는 이를 바로 앞에서 보게 되었다. 소중한 이로 여겨져 슬퍼해 주는 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웠다. 저로 인해 그들이 슬퍼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쿄쥬로는 떨리는 입을 움직였다. 젖 먹던 힘을 쏟아내 안에서 밖으로 소리를 끄집어냈다.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 전해주고 싶은 말 전부를.

왜 그럴까. 전보다 더 많은 눈물과 떨림이 보이긴 했으나 마음이 가벼웠다. 호흡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구멍이 난 마냥 숨이 고르지 못했다. 배 부근이 뜨거웠다. 강한 고통이 느껴지다 못해 이젠 온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리까지 먹먹해져 갔다.

이젠 한계인가.

마음이 가벼운 덕분일까.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러나 미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미안하다, 센쥬로. 생일.... 챙겨주지 못하겠구나. 그리고 아버지....

눈이 점점 감겼다. 머릿속에서 기억이 되짚어졌다. 시간이 되돌아가는 마냥 이 열차를 타기 전, 센쥬로에게 인사하던 때, 아버지에게 임무를 나간다고 전할 때. 하나씩 뒤로 갔다. 수많은 기억 탓에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그러다 흐릿한 시야에 무언가가 잡혔다. 쿄쥬로는 바라봤다. 그리고 동공이 흔들렸다.

어머...니.

심장에 크게 뛰기 시작했다. 삼킨 숨을 내뱉지 못했다.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일까. 몇 년간 보지 못했음에도 기억 속 선명한 얼굴 그대로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전하지 못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한마디면 충분했다.

 

저는 제대로 해냈을까요.

 

해내야 할 일, 이뤄내야 할 일을.

 

잘.... 해냈을까요.

 

루카는 엄했다. 그러면서도 다정했다. 그러한 따스함을 쿄쥬로는 좋아했다. 항상 무표정에 가까웠다. 엄하다면 엄할 수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운 걸 본 적 있었다. 정확히는 떨림과 눈물이 섞인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쿄쥬로는 슬펐다. 그녀가 울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울지 않기를, 웃기를 바랐다.

쿄쥬로는 대답을 기다렸다. 내 책무를 잘 끝낸 걸까. 여러 감정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이는 곧 하나로 일정해졌다. 이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모든 걸 끝낼 수 있었다. 쿄쥬로는 웃어 보였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봤던 제 어머니의 목소리를 깊이 새기며 눈을 감았다.

 

 

***

감각이 없었다. 온몸에 어떠한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어둠 속에 녹아들 뿐이었다. 어쩌면 이 어둠도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시야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어떠한 것도 정의 내리기 힘들었다.

난, 죽은 건가.

그런 생각을 짧게 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죽음은 무(無)에 가까울 터. 그런데 어찌 지금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쿄쥬로는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더니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서서히 눈꺼풀을 올렸다. 빛이 새어 들어와 눈동자가 이를 차차 삼켰다. 익숙한 천장이 제일 먼저 시야에 잡혔다.

여긴.

고개를 조금씩이나마 돌렸다.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은 제 집, 렌고쿠가 안의 제 방이었다. 이 상황이 다소 당황스러웠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죽지 않은 거군.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자신은 죽음이 아닌 삶에 선택받았다. 뒤늦게 혈관 내 피가 맴도는 것 같았다. 낮았던 체온이 올라가고 감각이 돌아왔다. 먼저 손가락부터 움직였다. 감각이 무뎌져 굳은 마냥 제 마음대로 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씩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다.

이래선 몸을 일으키진 못하겠군.

폐에 담겨 있던 탁한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들이켰다. ‘살아있다’라는 감각을 다시금 확인했다. 밖에서 작은 새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한 방안까지 울려 퍼졌다. 매일 듣던 소리일 텐데 어찌 이토록 아름다울까. 미소가 지어질 만큼 좋은 소리였다. 그러던 중 방안으로 다른 소리가 들어왔다. 나무가 틈 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쿄쥬로는 누가 들어오고 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제 예상은 들어맞았다.

 

“센쥬로.”

“혀, 형님...? 형님!!”

 

침울해 있던 센쥬로의 얼굴은 금세 당황감이 가득 들어찼다. 동시에 기쁨이 섞여 있었다. 센쥬로는 쿄쥬로의 옆으로 달려왔다. 무릎을 바닥에 붙이고 앉아 눈물을 떨어트렸다. 울음 탓에 어눌한 발음이 이어졌으나 한 단어만큼은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살아 있으셔서 다행이에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마음고생이 심한 게 그의 눈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쿄쥬로는 팔에 힘을 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손이 센쥬로의 머리 위로 향했다.

 

“다녀왔다, 센쥬로.”

 

쿄쥬로는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행이라 여겼다.

센쥬로의 눈물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진정할 때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넌 여전히 눈물이 많구나.”

“혀, 형님이 그런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어찌 안 울 수 있겠습니까.”

“하하. 미안하다.”

 

제 책무를 다해 돌아왔다. 책무를 다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했다. 그러나 이렇게 집에 돌아오기까지 했다. 과분할 만큼의 행복이고 행운이었다.

어머니. 저는 아직 당신 곁에 갈 수는 없었던 건가요.

아직 제 책무를 끝내기엔 부족했던 걸까. 쿄쥬로는 마음이 가볍기도, 무겁기도 했다.

 

“형님..?”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쿄쥬로는 부름에 표정을 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나를 일으켜주면 좋겠다만.”

 

센쥬로는 머뭇거렸다. 그의 상처가 깊었던 만큼 계속 누워있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나 쿄쥬로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센쥬로는 조심스럽게, 고통이 덜하게 몸을 일으켜줬다. 복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내색하지 않고 상체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호흡을 이어가 최대한 상처의 악화가 심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형님, 이마에 땀이... 제가 닦아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미안하다. 그럼 좀 부탁하마, 센쥬로.”

 

붉게 달아오른 눈이 웃음을 지었다. 미안함이 더욱 깊어졌다.

다시 방에 혼자가 되었다. 호흡을 이어나가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복부를 감싸던 천이 붉디붉은 피로 뒤덮였다.

 

“쯧. 미련한 놈.”

 

방문에 신쥬로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당황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버지....”

“내가 매번 말하지 않았더냐. 소용없다고. 그깟.”

“아버지.”

 

쿄쥬로는 신쥬로를 쳐다봤다. 당황한 기색은 어디로 갔는지 진지한 공기가 맴돌았다. 신쥬로는 그를 통해 살아있을 적의 루카를 겹쳐 보았다. 가슴이 크게 붕 떴다가 가라앉았다. 숨이 잠시나마 멈춰버렸다.

 

“이 렌고쿠 쿄쥬로, 무한 열차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신쥬로는 눈물이 날 것 같음을 억지로 참았다.

어찌 이토록 닮은 것이냐.

쿄쥬로의 미소에 신쥬로는 고개를 숙였다. 손으로 눈을 감췄다. 그리고 엄지와 중지로 눈가를 문질러댔다.

 

“아버지?”

“벗어라.”

“다짜고짜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상처. 덧난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쿄쥬로는 흠칫했다. 순간 놀랐으나 이내 이해했다.

역시 아버지이시군요.

옷을 내렸다. 천이 피로 범벅되어 진득하게 살에 붙었다. 신쥬로는 혀를 차면서도 도와줬다.

 

“아, 아버지?!”

“얼른 닦을 걸 가져와라!”

“네, 네!”

 

뒤늦게 들어온 센쥬로는 놀랄 틈도 없이 신쥬로의 옆으로 다가갔다. 둘이서 함께 제 몸을 닦고 천을 갈아줬다. 이러한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게 언제일까.

어쩌면 지금이 처음일지도 모르겠군.

상처에서 느껴지던 아픔이 덜했다. 기분 탓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건 이토록 따뜻한 것이었나. 쿄쥬로의 입꼬리는 내려갈 틈이 없었다.

전보다 몸이 가벼웠다. 드디어 이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마룻바닥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마실 수 있었다. 맑고 깨끗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심이 한없이 좋았다.

 

“형님. 이제 식사하러 가요.”

“음! 금방 가도록 하지.”

 

아직 혼자의 힘으로 걷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센쥬로의 부축을 받으며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얘기했다. 그러자 센쥬로는 매번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센쥬로는 지금 제 옆에 쿄쥬로가 있다는 사실이 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안심할 수 있었다. 힘이 들더라도 좋았다. 그가 살아있으니까. 그 사실을 몸소 느끼고 싶었다.

 

“앉아라.”

“네.”

 

먼저 신쥬로가 앉아 있었다. 쿄쥬로와 센쥬로도 뒤늦게나마 음식 앞에 앉았다. 쿄쥬로는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센쥬로. 난 이제 괜찮다만.”

“안 돼요. 의원께서 며칠간은 소화 잘 되는 음식만 된다고 하셨어요.”

 

고구마 밥, 된장국, 튀김. 그들의 식사와 달리 쿄쥬로는 오직 죽뿐이었다.

이런, 이런.

 

“최소한 반찬이라ㄷ.”

“잔말 말고 먹어라.”

 

쿄쥬로는 더 이상 군말 없이 먹기로 했다.

식사는 침묵으로 이어졌다. 식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센쥬로는 그릇을 정리하러 방을 나갔다. 신쥬로와 쿄쥬로. 둘만이 방에 남겨졌다. 어색함은 없었다. 침묵은 익숙했기에. 그렇기에 신쥬로가 먼저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제 염주도 끝이다.”

 

다소 놀람에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한 말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끝은 없습니다, 아버지. 재능을 가진 이가 나타날 것이고, 누군가가 이을 것입니다.”

“고집은. 내가 말하지 않더냐. 이도 저도 아닌 실력으로는 죽음뿐이라고. 지금 네 녀석의 모습을 봐라. 거의 죽어서 돌아오지 않았느냐.”

 

죽음. 그 단어는 몹시 멀면서도 가까웠다. 삶과 죽음은 동전 뒤집기와도 같았다. 서로 먼 존재이면서 가까운 존재. 옛날의 저라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 사이의 벽이 얼마나 얇고 투명한지 안 저로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도와준다. 그게 강한 자의 책무이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께 배웠습니다.”

 

신쥬로는 ‘어머니’라는 단어에 반응을 보였다.

 

“저는 아버지를 닮아 강한 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저는.”

“강하지 않다....”

“아버지?”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보냈는데 어찌 강하다고 할 수 있겠냐!!”

 

나약했다. 한없이 약했다. 뭐가 강한 자란 말인가. 가족 하나, 제 아내 하나 지켜내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게 원망스러웠다.

 

“난 더는 가족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다. 그러니 그만둬라. 그런 쓸데없는 짓은.”

 

쓸데없는 짓. 그 말이 쿄쥬로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단어였다. 그렇기에 더 생각할 것도, 기억할 것도 없었다. 쿄쥬로는 고집이 셌다. 누구만큼이나.

 

“못난 자식이라 생각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쉽게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

“너, 이 자식이 지금 이 아비.”

“저는 그 목표로 지금까지 삶을 이어왔습니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단련하며 실력을 키워왔습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기쁘기도 했습니다. 성장해 나가는 저를 보니 목표와 가까워진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하루 만에 그 목표를 지워버린다면 전 어떻게 삶을 살아가라는 말씀이십니까.”

 

미소를 짓던 쿄쥬로는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진지함이 묻어났다. 주변 공기마저 뒤바꿔 버렸다. 신쥬로는 할 말을 잃었다. 본인도 알고 있었다. 일평생의 목표를 잃는다면 낭떠러지에 직면하고 아래로 떨어지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없다는 것쯤. 치아를 빠득 씹었다. 가슴속에서 답답함에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너도 그 광경을 봐놓고서 어찌....

신쥬로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이내 삼켰다. 쿄쥬로의 표정을 보게 되었다. 따스한 빛이 제게로 와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저와 닮은 자식. 저와 같은 방식으로 삶을 이어나간 아들.

하지만 넌 나보다.

신쥬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불효자다, 넌.”

 

그 말을 하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봤다.

 

어서 와라, 망할 아들놈아.

 

신쥬로는 방을 나섰다. 작디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쿄쥬로는 고개를 돌려 신쥬로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갔다. 넓고 강인함이 묻어난 등. 예전부터 존경해왔다. 그 모습은 어디 가지 않고 그에게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진 뒤, 마당 쪽을 바라봤다. 조금 더 가까이 보고자 마룻바닥으로 몸을 옮겼다. 따스한 햇살이 기분이 좋았다. 뭘까. 들이마시는 공기의 맛이 달랐다. 쉽게 목구멍을 스쳐 폐로 들어갔다. 달콤했다. 이런 공기를 언제 또 맛볼 수 있을까. 쿄쥬로는 연신 폐를 움직였다. 그리고 마당의 풍경을 응시했다. 기억이 되살아나듯 마당에 ‘가족’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검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던 신쥬로. 그걸 열심히 따라 하는 쿄쥬로와 센쥬로. 검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자신과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센쥬로. 그리고 안에서 책을 읽던 어머니. 쿄쥬로는 방안을 훑어보던 시선을 다시 밖으로 옮겼다.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어머니.

쿄쥬로는 숨을 고르며 햇볕을 쬐었다.

 

 

 

***

밤사이 밑으로 떨어져 있던 해가 다시금 위로 올랐다. 밝디밝은 빛을 내뿜으며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형님.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대답이 없었다. 아직 잠을 자는 걸까. 센쥬로는 살짝 열었던 문을 더 밀었다. 안으로 들어가 바깥과 연결된 문을 열었다. 어둠은 사라지고 빛을 삼켰다.

 

“밖에 탄지로씨네가 왔어요. 형님의 상태가 궁금하셔서 오셨데요. 다들 걱정 많이 하셨어요. 그러니 얼른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대답이 없었다.

 

“형님?”

 

센쥬로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바지를 정리하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깨워도 괜찮을까?

단잠을 방해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을 생각해서라도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급히 손을 뒤로 뺐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형님....? 형님. 형님! 형님!!”

 

센쥬로는 그날 처음 알았다. 사람이 이토록 차가워질 수 있다는걸. 그러면서도 웃고 있는 모습은 한없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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煉獄 杏寿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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