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 언젠간 염주의 하오리를 걸치고 아버지를 따라 도깨비의 목을 칠 저를 지켜봐 주세요.꿈을 꾸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어머니의 꿈을 꾸었습니다.
어찌 잊으라 하십니까. 어찌 모른 채로 살아가라 하십니까.
그저 조용히 땅을 적시는 봄비에 못 이겨 나풀나풀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저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차마 어머님을 목 놓아 부를 수도 없습니다.
여름 하늘 우거진 녹음 사이 드리워진 느티나무의 잎사귀들처럼, 저는 그렇게 굳건하지 않습니다.
차마 소리 내어 통곡할 수도 없습니다.
달을 잡고 싶습니다. 달을 잡아서 어머님께 가져다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말 야속합니다. 잡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손톱달처럼 저물어가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어머님께서 살아 계실 적 저와 함께했던 모든 추억들이 냇가에 떨어진 시든 잎과 함께 떠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꿈을 꾸게 해 달라고 하늘에 매일 매일 빌었습니다. 어렸을 적 저를 따듯하게 안아주시던 어머니의 품이 너무나도 그리웠습니다.
한 번은 어머니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머니가 소중히 여기시는 물건을 훔쳐 품속에 소중히 보관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아픈 몸으로 타이르시던 어머니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저는 너무 죄송한 나머지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저 때문에 아직 많이 어렸던 동생인 센쥬로가 잠에서 깨고 말았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아무 말씀 하시지 않고 절 안아주셨습니다.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 그런 사랑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어머니도 그런 사랑을 받고 자라 오셨던 것일까요?
꿈이라도 좋으니 다시금 어머니를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의 저 자신이 너무나도 후회스럽습니다.
그립다고 하면 더 그리워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어리석은 저는 일찍 깨닫지 못하고 여름이 되었음을 알리는 소나기에 몸을 맡긴 채로 하늘의 눈물 사이에 제 자신을 숨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꿈을 꾸고 나니 천 리 길을 걸어도 어머니를 뵐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또한 그간 어머님의 꿈을 꾸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다 부질없다는 듯이 꿈속의 기억은 겨울날 흩어지는 눈송이들처럼 하늘로 날아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몇 번이고 맞이해도 저에게 걸맞은 자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을 굳세게 다잡아도 식은땀에 뒤덮인 저를 센쥬로가 깨우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납니다.
시간이 야속합니다. 저는 변하지 않는데 저를 제외한 모든 것은 변합니다. 허나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아릿해지는 제 가슴 한구석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곡조가 되었고, 세상의 소리는 그저 마침표 없는 창(唱)의 아니리 같습니다.
먼 훗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잊혀 갈 때 즈음이면, 아버지도 센쥬로도 그 공백을 메꾸어 줄 수 없기에 기약 없는 문장을 종이에 눌러 앉힙니다.
이 글이 어머니에게 닿을 때면 저는 상오(上午)에 내리는 밤비처럼 풀벌레 울음소리를 벗 삼아 서글피 울 것입니다.
그 때까지 염주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잇겠습니다.
더 이상 꿈에서 어머니를 뵙지 못해도 좋으니, 이 편지를 어머니와 나눈 언약이라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마음을 불태우겠습니다.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서 행복했습니다.
하늘에서, 언젠간 염주의 하오리를 걸치고 아버지를 따라 도깨비의 목을 칠 저를 지켜봐 주세요.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복부가 관통된 것 같은 고통. 파도처럼 밀려 들어오는 통각. 이명인지 울음소리인지 구분하지 못하겠는 소리가 귀에 울려 퍼진다.
아니다, 이건 고통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아픔이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하다. 오월에 부는 따듯하고도 부드러운 바람에 경쾌한 소리를 내는 풍경.
익숙하다.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아주 부드럽고도 아름다운 느낌.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어머니, 어머니이신가요?
어머니, 정말 어머니가 맞나요?
-
제가 잘 해냈나요?
결국 제가 염주가 되어 어머니의 얼굴에 먹칠하지 않을만한 업적을 남겼나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나요?
"쿄쥬로, 일어나세요. 무슨 악몽이라도 꾸었나요?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하네요.
얼른 다른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어미는 잠깐 다른 곳에 가 있겠습니다."
'어머니, 가지 마세요. 저랑 함께 있어 주세요.'
목이 잠겨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깊고 깊은 꿈에 바닥에서 겨우 헤어나온 것만 같다. 모든 걸 다 끝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꿈속의 기억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굉장히 기분 나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그곳의 저 자신은 어렸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고 하루하루를 슬픔에 잠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일장춘몽(一場春夢). 손에 가득 잡은 모래알처럼 한순간에 사라지는 어머니의 모습은, 절대 손에 다 담아내지 못 할 따스한 봄의 온기를 잡아낼 때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간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깨달았던 것들을 글로 남겨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약 아닌 언약을 가슴에 묻어 둔 상태로 염주가 되기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을 먹고 잠에서 깼습니다.
염주라는 것이 무엇인진 잘 모르겠지만, 꿈속의 제가 사는 세계엔 도깨비라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또 다른 꿈이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에 비쳐 들어오는 햇빛은 노을, 아니. 동틀녘이었습니다.
다량의 숯 냄새가 코를 찔러 들어왔고, 무언가 타는 냄새도 났던 것 같습니다. 저릿한 피 냄새도 났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아팠습니다. 복부가 관통된 듯한 느낌도 들뿐더러,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 가슴 한쪽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분했습니다. 도깨비의 목을 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마 저는 죽어가고 있던 것이겠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귀에 울려 퍼지던 소리는 이명이 아닌 누군가의 울음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덕분에, 가슴 한 켠을 억누르고 있던 고통에서 벗어났습니다.
저에게, 무척 잘 해 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쿄쥬로, 아주 나쁜 꿈을 꾸었네요.
이리 오세요.
어미의 품에 안기세요."
이 말씀, 언제 한 번 들어본 것 같습니다.
"어머니, 몸은 편찮지 않으신가요?"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쿄쥬로? 굉장히 건강하답니다. 어미 걱정도 해주고, 다 컸네요. 고뿔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아무리 여름이 되어간다 해도 식은땀을 흘린 상태로 있으면 나쁜 병에 걸리기 십상이랍니다."
온화한 어머니의 미소. 그간 느꼈던 감정과 기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간다.
"어머니, 그건 그렇고 센쥬로와 아버지는 어디 계시나요? 한밤중에 어디라도 가셨나요?"
"쿄쥬로,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저희에게 꼭 올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걸릴 진 알 수 없지만, 늦게 올수록 좋은 것이니 그리 알고 있으세요."
"저한테 말도 없이 둘이서만 어디로 외출을 나간 모양입니다. 다음에 저도 따라가겠다고 해야겠습니다. 오밤중에 걱정 드려 죄송합니다, 어머니. 이만 주무세요. 저도 함께 자겠습니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평생토록 느껴보지 못한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느낌. 무언가 중요한 걸 다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지만 더는 신경 안 써도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적어도 이건 꿈이 아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계시는데 현실이 아닐 수 없다.












